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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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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앨범을 뒤척거릴 때마다 어릴적 사진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제 자신에 대해서 라기보다 주변인들의 모습에 대해서요. 특히 엄마나 아버지 사진을 보면 그런데, 지금 저에게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라면 지금의 두 분 모습과 더불어 10년 전 정도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항상 같다고 느껴왔던 모습들이 지금 보면 너무나도 다르고, 어떤 의미론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분명히 그 시절에 엄마와 보냈던 일상이나 시간들은 많이 기억에 남아있고 생각이 나는데도 그 당시의 엄마의 모습은 거의 떠오르지가 않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은 듭니다만, 그래도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 위에 얘기와 이어서 한다면, 저에겐 남아계신 조부모님은 (외)할머니 한분 밖에 안 계십니다. 솔직히 예의가 없거나 불경스럽거나 욕 먹을 소리인 지도 모르겠지만 외할머니를 제외한 돌아가신 다른 조부모님들께는 큰 애정이 없던 게 사실입니다.

돌아가신 그 분들이 특별히 저희를 이뻐해주신 것도, 또 자주 뵌 것도 아닌지라 더 그럴 지도 모르겠네요.(뭐 여러 일들도 있고요) 그래서 그 분들이 돌아가셨을 때도, 돌아가신 슬픔보다, 부모님이 슬퍼하시는 모습이 더 가슴아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계신 할머니는 저에겐 애착이 많은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자세한 집안 사정이라서 쉽사리 쓰진 못 하겠지만, 참 힘든 일도 많으셨고, 고생도 많이 하셨음에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나, 여러 모습들은 어릴 때 부터 많이 느껴왔었죠.

객관적으로도 참 다재다능하시고 아마 요즘 시대에 태어나셨다면 틀림없이 무언가 자기분야에서 큰 일을 이루셨을 분이지만, 그 당시 여성분들이 그렇듯이 참고 지내셨어야만 했기에, 저희 엄마나 돌아가신 이모에겐 끝까지 교육을 시키셨다고도 하고요.




얘기가 잠시 이상한데로 샜지만, 사실 할머니는 노년에 참 고생을 더 하시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아니지만, 혼자 사시게 되면서 이제야 좀 편해지셨다고 느낄 무렵 부터, 크게 다치시거나 그로인한 수차례 수술들로 점점 거동을 하기 힘들어지시게 되었죠. 또한 치매가 같이 왔는데, 전신 마취를 할 때마다 점점 상태가 급격히 안좋아지더라구요.

거리도 멀고 다들 바쁘게 살다보니, 1년에 한두번 뵙기도 점점 힘들어졌지만, 재작년 쯤에 저희 집에 오래 계실 땐 저랑 죙일 같이 있으면서 여러가지로 느끼게 된 점들이 많았습니다. 제 기억 속의 따뜻하고 무조건 손주들의 말을 들어주시던 할머니와 다르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같이 지낼 수록 성격의 단점인 부분이나 고집같은 것들이 보이더라구요. 물론, 치매가 있으셔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기억하던 할머니와 많이 다른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올 초에도 부산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간적이 있었습니다. 항상 염색을 하시던 분이었는데, 병원에 가보니 완전한 백발에 말그대로 환자의 모습이셨고, 치매도 많이 진행되서 어휘수준이나 기억의 부분이 일반적인 기준에서 많이 모자랐지만 그래도 제 기억 속의 할머니와는 크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에 다시 반년 정도 만에 할머니를 뵈러 혼자 부산의 병원에 갔습니다. 사실 할머니를 보고싶다란 생각보다는 어떤 의무감 때문에 갔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인분들만 계시는 병원에 들어서자 많은 노인 분들이 저를 쳐다보시더라구요. 아마 자신들을 찾아온 가족들을 기다리시는 거 같았습니다. 병실에 가보니 할머니가 자리를 비우셨다고 하기에 저는 흔쾌히 '할머니를 설마 못 찾겠냐'란 생각에 도움을 마다하고 저 혼자서 찾아보겠다고 하고, 물리치료실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치료실에 가봐도 할머니는 안 계셨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제가 못 알아 봤었죠. 바로 앞에 계신데도요. 반 년 사이에 할머니가 전혀 못 알아 뵐 정도로 외관도...그리고 상태도 악화되셨더라구요. 자세한 얘긴 못 올리지만, 참혹하다고 느낄 정도로 안타깝고, 그 모습에 익숙해지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달 정도 뒤인 어제 연락이 왔습니다. 원인이나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만 얘기하자면, 할머니의 다리가 썩기 시작해서, 고관절 부터 절단을 해야 한다는 거였죠. 물론, 어차피 할머니는 걷지도 못 하시고, 누워만 계신데다가, 수술을 안 하면, 그 부위가 점점 퍼지게 될 것이고,
다른 치료도 이미 불가한 상황이며 그 치료를 해도 다른 위험도 크고 엄청난 고통이 계속 있을 거라고 했다네요. 하지만 동시에 수술을 하신다고 해도, 깨어나실 가망성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도 하고요.

엄마나 외삼촌들은 당연히 수술을 반대하셨고, 어차피 가실 분 몸이라도 성하게 보내드렸으면 한다고 오늘도 수술을 반대하시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주말이라서 수술을 할 의사도 없다고 하고요.
진통제도 안 통해서 지금은 몰핀만 맞고 계신데, 그것도 이젠 효과가 없다고 하는데,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고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중에 할머니를 떠 올릴 때, 저를 이뻐해주시던 어릴 적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지, 아니면 할머니 댁에 가면 손주들 뭐 먹이겠다고 직접 회를 뜨시던 모습을 떠올리게 될지, 새벽 부터 시끄럽게 도마소리를 내시며 음식을 차리시던 모습을 생각할지, 집에서 죙일 컴퓨터만 하던 제가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시곤 '참 공부 열심히 한다 자식' 이라고 말하던 모습이 생각날 지 아니면 요 근래의 할머니의 힘든 모습을 떠올리게 될 지는 모르겠어요. 모든 게 할머니의 모습이고 그게 제 기억이고 그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점점 예전의 좋은 기억이나 건강한 모습의 기억은 사라져 간다는 것이 참 안타깝네요.



이틀 간 많이 울었습니다. 그냥 여러가지로 계속 눈물만 나더라구요. 지금 많이 울어두는 게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며칠 뒤 이겠지만 그때라도 지금 울어둬야 엄마가 힘들어 하실 때 도움이라도 되겠죠.






할머니 그 때, 할머니 드시기 싫어하시는 반숙계란 억지로 드시게 한 거 너무 죄송해요.

by 이사무 | 2008/09/01 00:50 | 중얼중얼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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